2020년 8월 31일 월요일

북미 취업 팁: 경력 쌓기

     임시직이든 어떤 형태로든 직업을 유지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 새로운 인적 교류의 기회를 갖는다.  새로운 인맥을 만든다.

■ 취업 가능성을 늘리고, 이력서의 간극을 메운다.

■ 내부에서 정규직으로 갈아탈 수도 있다.


    북미에서 원하는 직장을 얻기 위해서는 늘 작은 경력이라도 쌓아 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소위 취업 시장에서 "게이트" 혹은 "스쿨"이라는 은어가 있다.  같은 의미인데 원하는 직장은 아니지만, 비슷한 업무나 연관된 업무를 수행하는 곳에 비교적 들어가기 쉬운 회사가 있다.  보통 급여 수준은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워크퍼밋이나 영주권 후견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회사들은 규모가 작거나 크더라도 일반적인 제품보다는 특수한 제품 혹은 조직 운영을 하는 경우이다.  

    어느 정도 경력이 되는 현지의 이직자들은 보통 비슷한 직무를 유지하면서 더 나은 급여나 조건을 받고 싶어 하기에 이런 회사들은 기피 대상이다.  처음 미국, 캐나다에 와서 영어가 당연히 부족한 상황인데 유창한 영어가 아니면 현지 회사에 갈 수 없다고 포기하는 이주자들을 더러 보았다.  하지만, 이는 잘 못된 판단이다.  분명히 구직자가 기술과 경력이 있고, 현지 문화에 적응하겠다는 각오만 있으면 좋은 직장은 많이 있다.

    펜데믹에 의해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  실업율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때가 이주자에게는 더 많은 문호가 열리는 회사도 있기에, 항상 틈새를 찾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할 것이다.


추천 글: 미국 캐나다 취업시 주의할 점 제 1 편 급여 협상의 3가지 팁

2020년 8월 30일 일요일

캐나다의 위인들 프레데릭 밴팅(Sir Frederick Banting: 1891-1941)

  

    진정한 의사가 아쉬운 요즘 시기에 캐나다의 밴팅은 대중들이 원하는 그런 모습을 가진 의사 중 한명이 틀림없다.  인슐린을 발명하여 수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였고, 꾸준한 연구로 노벨 의학상까지 수상하였다.  그이 학문적인 업적보다 그를 더 빛나게 하는 것은 거부가 될 기회를 버린 채 특허권을 모교에 단돈 1.5$에 넘겨 주어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게 하였다는 사실이다.

캐나다의 위인들 (테리 폭스)

     1958년도에 태어나 1981년도에 22세라는 나이로 짧은 인생을 마감했으나 테리 폭스의 영향력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는 학업 중에 장거리 달리기 선수와 농구 선수로 활동했으나, 그로 유명한 위인은 아니다.  어느 날 그는 암 판정을 받은 후 운동 선수로서의 삶을 살 수는 없었다.  1977년도에는 다리마저 절단되는 불행을 갖게 되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


    테리 폭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휠체어 농구 선수로 활동하며 의족을 착용하고 꾸준히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또한, 모금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모든 캐나다인에게 단 돈 1달러만 기부해 달라고 요청하며 마라톤 행사를 이어 나갔다.  장애를 딪고 온 국민에게 용기를 선사한 그는 1980년도에는 루 마쉬 트로피를 수여 받는 등 국민 영웅으로 등극하였다.  모금에 성공적이었고, 그는 상업적인 기업의 제안은 모두 거절하고 순수한 모금과 기부 활동을 이어 나갔다.

   장애, 절망 등의 상황 속에서도 큰 금액을 모금하고 기부하는 그이 재단은 사후에도 그 활동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  역격을 딪고 일어서 영웅이 되어 큰 부자가 되고 권력을 이룬 자들보다 테리 폭스가 더 위대한 위인이라는 생각이다.  그의 의지와 정신이 많은 캐나다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Experience Serenity in Every Sip: Aik Cheong Matcha 3 in 1

  Introduction: In a fast-paced world where every moment seems to be a rush, finding moments of serenity becomes a luxury. Amidst the chaos,...